작년 12월, <레 미제라블>뮤지컬 영화가 선풍적 인기를 끌 때 즈음,
나와 동생도 그 영화를 보았다.
줄거리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 영화를 보기 전날
초등학교 고학년용 레 미제라블 도서를 보았다.
200쪽 정도의 짧은 책이었는데도 읽고 감명을 받았다.
그런 축약판에서도 '책 참 잘 지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그 책의 진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서
유투브에서 레 미제라블 뮤지컬 25주년 기념 콘서트와 10주년 기념 콘서트,
패러디까지 모조리 다 찾아보았다.
레 미제라블이 내게 준 영향은 대단했다.
그 즈음, 신문에서 레 미제라블 완역판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았는데,
딱 보기에도 방대한 양이라서 그것을 읽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거의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3월 초, 학교 도서실에서 이 책 5권이 새로 구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레 미제라블을 읽어봤다고 자부하려면
적어도 완역판은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충동적으로 1권을 빌렸다.
그리고 매일 밤 100쪽씩 읽으며 저번 주까지 5권을 모두 읽게 되었다.
절도죄로 19년간 복역하고 탈옥한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쳤다가 용서를 받고 새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마들렌 시장으로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다가
가짜 장발장 재판에서 자신의 실체를 밝히고 만다.
장발장을 맡았던 형사 자베르에게서 간신히 탈출한 장발장은
자기 소유의 공장 여직원의 딸 코제트를 데려와 수녀원에서 살게 된다.
코제트는 자라 처녀가 되었고,
부녀는 뤽상부르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을 일과로 삼는다.
그러던 어느날 코제트가 워털루 전쟁 대령의 아들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지고,
폭동이 일어났을 때 장발장이 그 사실을 발견한다.
상실감에 빠졌지만 장발장은 곧장 바리케이드로 가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구해내었고
코제트는 마리우스와 결혼한다.
장발장은 코제트가 떠난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며 별거를 하는데,
마리우스는 장발장이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당장 장발장을 찾아간다.
이미 쇠약해진 장발장은 두 젊은이의 손을 잡고 영면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줄거리 외 이야기가 너무 많아 어려웠다.
미리엘 주교, 수녀원, 워털루 전쟁과 프랑스 혁명 이야기 등
사회, 정치, 종교 관련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문학적 표현들이 놀랄 정도로 아름다워
밤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표현들은 스마트폰에 저장도 해 두었다.
어쨌든, <적과 흑>을 읽었을 때처럼 다음에 프랑스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프랑스 사회에 대한 지식을 어느정도 갖추고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역판을 읽으니 축약판에서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가브로슈가 에포닌의 동생이며,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굴다리를 지나갈 때 아무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 하층의 여러 사람들을 보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또, <레 미제라블>이 그 이름처럼 장발장이 주인공이 아니라
등장한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위고는 장발장을 주축으로 줄거리를 이끌어 나가지 않았다.
특히 1~2부에서는 장발장보다 주교, 팡틴, 테나르디에 같은
다른 인물의 이야기나 프랑스 사회 이야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내 생각엔, 모든 인물을 불쌍한 사람들로 여기되,
장발장을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고
이야기가 그에게 모아지도록 소설을 쓴 것 같다.
동생에게 이야기해 준 것 처럼,
<레 미제라블>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오지만
결국 위고는 모든 사람들이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발장과 팡틴, 자살한 자베르는 물론이고
마리우스를 포함한 폭동의 희생자들,
어렸을 때 학대당한 코제트,
심지어는 약삭빠르게 행동하다가 점점 더 가난해지는 테나르디에,
그리고 일생을 수양만 하는 수녀원의 수녀들마저,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위고는 이들 모두에게 애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고,
더 나아가 각 인물들이 대표하는 프랑스 사회 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결국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연민어린 시선을 대담하게 제목을 통해 표현한 위고가 존경스럽다.
이 이야기는 비단 프랑스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패러디 <레 밀리터리블>, <레 스쿨제라블>처럼
우리 사회도 조금만 들춰보면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행복하게 죽는 장발장, 사랑으로 맺어진 퐁메르시 부부)처럼
우리 사람들도 모두 마지막엔 고통속에서 행복을 찾게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길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이 완역판을 읽으며
축약판에서 읽을 수 없었던 위고의 문학적 표현들과
프랑스 사회를 향한 그의 생각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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