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까오량 가족(2007)/모옌/문학과 지성사

 

홍까오량 가족 | 모옌 - 교보문고

<홍까오량 가족>은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의 작가 모옌이 쓴 장편소설이다.
중국어 수행평가로 추천도서를 읽고 쓰는 감상문 활동이 있어서 읽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반생연>이 더 재미있어서 그걸 읽으려고 했다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겨서 
<홍까오량가족>을 읽기로 결정했다.

알고보니 이 책은 나현선 선생님이 꼭 알아두라고 강조하셨던
중국의 유명 영화감독 장이모우가 영화화를 해서
그 영화가 아카데미상까지 받았던 작품이었다.

책은 주인공의 아들인 '나'의 시점, 즉 관찰자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등장인물도 또우꽌은 아버지, 따이펑리엔은 할머니, 
위잔아오는 할아버지, 루어한은 큰할아버지 등 가족 호칭으로 불린다.
처음엔 이런 설정이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읽다보니 만약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이름을 거론하며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더없이 딱딱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같은 형태의 관찰자 시점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이 작품을 보다 애틋하고 친밀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 같다.
아마 이 작품이 호평을 받는 이유도 흔한 전쟁소설, 혁명소설과 달리
아이의 눈으로, 가족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게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펄 벅의 <대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지>에서는 줄거리가 전개되는 내내 '대지'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또 '대지'로 시작해서 '대지'로 마무리된다.
결국 온갖 일이 일어나도 가장 중요했던 소재는 '땅'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붉은 수수'로 시작해서 '붉은 수수'로 끝난다.
말할 것도 없이 붉은 수수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소설의 배경이 되는 까오미 향촌의 둘도없는 버팀목(토템)이 되는 존재이다.
<대지>에서 중국인들이 땅 없이 살수 없고, 
땅이 바로 자신의 영혼과 같은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장소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처음 만나는 장소도, 
치유의 장소도, 아픔의 장소도 다 수수밭이다.
그럼 이 수수는 무엇일까.
수수는 중국인들이 아주 옛날부터 중요한 작물로 생각해 온 곡식이고, 
키가 1.5m~3m정도로 매우 크다.
결국 수수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향촌의 전통, 
더 나아가 중국의 얼이 되는 존재이고,
벼처럼 힘없이 숙여지기보다 더 높게, 꼿꼿이 서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중국민들의 자부심, 저항심,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책 내용이 욕설과 전쟁이 난무하고, 
잔인한 장면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내용이라
읽는 동안 침통한 마음이 몇 번이나 들었다.
요즘같아서는 살인사건 한 번만 일어나도 온 나라가 난리인데,
전쟁당시에는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승리감을 느꼈던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잔인하지만 사실적인 이 책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지 잘 알수 있었다.
특히 둘째할머니가 일본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해 미쳐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의 집회 모습이 떠올랐고,
그 분들의 고통을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아팠다.
굳건하게 일본 병사들과 맞서는 위잔아오 군대를 보고 그 생명력에 감탄도 했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마음으로' 느껴졌다.

위잔아오나, 또우꽌이나, 따이펑리엔이나 
여기 나오는 긍정적 등장인물의 공통점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과 수수는 이상하리만치 닮았다.
지금도 까오미 향촌(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에 가면 
수수밭이 넓게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이 수수와 함께 살아가다보니 
어느새 수수를 닮아간 것 같다.
그들 안의 수수들은 향촌의 생명, 
중국의 생명이기도 하고, 
어떤 인간에게나 있는,
살아남으려는 힘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