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독서일을 맞아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처음에는 이 저자가 토머스 헉슬리인 줄 알았는데 토머스 헉슬리는 올더스 헉슬리의 조부였다.
줄거리는 이랬다.
이 이야기는 포드 632년, 즉 서기 2545년부터 시작된다.
(미래의 세계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설립자인 헨리 포드가
포드자동차를 처음 만든 해를 원년으로 하는 포드 기원을 쓴다)
세계는 문명을 고도로 발달시켜 완전한 행복과 안정이 이루어진 유토피아를 이룩해 내었다.
(세계국가의 표어가 공유, 균등, 안정이다)
태외생식기술(보카노프스키법)을 개발해 인간을 알맞게 대량 생산해내고,
인간을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으로 나눠 일을 피라미드식으로 효율적이게 분배했다.
또 항상 행복한 감정을 느끼려고 코카인 등 마약성분을 이용해
술과 종교의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소마'라는 약을 만들어 내었다.
물론 노화를 더디게 해 60대의 할머니도 열여섯살의 소녀와 같은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고,
죽은 후에도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화장터에서 나오는 연기를 도로 모으는
인(P) 회수를 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 조건반사 양육소'라는 곳에서 근무하는 레니나와 심리학자 버나드,
그리고 그들이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데려온 야만인 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문명의 최고점을 달리고 있는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한 존은 결말에서 자살하게 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담담하게 흘러가는데, 끝이 비극적이어서 우울했다.
이 책에 나오는 세계는 유토피아이면서 디스토피아이다.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도 사실은 반어법으로 쓰인 것 같다.
공유, 균등, 안정, 즉 완전한 행복을 위해
예술과 종교를 포기하고 과학을 금지시킨 세계에서 살면 얼마나 지루할까?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생활도 보니 정말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요즘 세상도 마찬가지겠지만 더 그런 경향이 심해진 것 처럼 보였다.
전쟁도, 슬픔도 없는 세상이 얼마나 행복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빛은 어둠에서 더욱 밝게 빛나듯 행복도 어려움 속에서 찾아야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이야기는 부분부분마다 정확한 수치나 시간을 나열한다.
이것은 저자가 이 세계가 전체주의이며 완전한 행복을 위해
틀에 잡혀있는 생활을 추구한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장치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버나드가 소장에게 맞서면서
자기 개인의 의의와 중요성을 짜릿하게 인식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된다.
버나드는 박해받는게 절망과 우울증은 커녕 원기를 더해준다고 하며,
재앙에 부딪혀도 축복의 힘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역설이지만 맞는 말이다.
고난 없이 안정만 있다면 고난이 있을 때와 같은 자신 안의 놀라운 힘을 절대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삶을 살기는 싫다.
야만인과의 대화에서 세계 총통인 무스타파는
세계가 이제 안정되고 인간들은 행복하게 되면서
감정은 필요 없어지고 심지어 예술까지 포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에 나오는 내용이 생각났다.
안정된 우주선 안 세계에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비로소 개그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알고보면 우리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많은 부분들은
행복보다 고난에서 생겨난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날 밤, 나는 인터넷을 하다가 충격적인 게시글을 발견했다.
한 다큐멘터리 방송의 사진이다.
부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인공자궁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이는 출산과 성생활의 분리를 의미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진 속에는 한 아기 모형이 액체가 담긴 통 안에 여러개의 줄이 연결된 채로 들어있었다.
다른 사진 속 교수는 이것이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사실 긍정적인 효과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멋진 신세계 초반에 나오는 인간 대량생산을 위해
돼지 태반으로 태외임신과 출산을 시키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글의 댓글들이다.
반응들은 하나같이 이 책에 나오는 내용(대량생산, 외모 등이 우월한 유전인자만 골라 육성 등)을
예측하며 우려하고 있었다.
이 책이 1930년대에 나온 책인데도 말이다.
무려 80년 전인데도 현대 사회를 너무도 정확하게 예측한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이 '멋진 신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 예술과 종교와 과학이 사라질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세계가 되는 것을 정말로 바라지 않는다.
거친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야 말로 가치있고 아름답듯이,
고난 많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진정한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유토피아가 사실은 디스토피아라는 얘기가 실로 참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가 너무 비극적이라며 외면하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이 책은 힘든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보게 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모든 친구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저자가 말하는 참 뜻을 그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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