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촘스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영어 보충수업 시간이었다.
한 지문에서 촘스키의 언어학 개념에 대해 나왔는데
선생님께서 '촘스키는 반드시 알아야 할 언어학자이다'하시면서
노암 촘스키라는 사람에 대해 소개해 주신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이 촘스키에 대한 책을 발견해서,
왜 이 사람이 '꼭 알아야 할 사람'인가 궁금했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촘스키는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언어학자이기도 하면서 정치가이고
그 외 다양한 분야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촘스키의 업적에 대해
크게 언어학자로서의 업적과 정치가로서의 업적으로 나누었다.
어떻게 이렇게 동떨어진 두 학문을 동시에 다루고 연구할 수 있었을까?
정말 신기했다.
물론 두 업적 사이에 관련은 없다.
정말 언어학은 언어학 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따로 놀았다.
하지만 촘스키는 미국을 비판하는 글을 쓰고
시위대 앞에서 연설을 하며 바쁜 아나키스트의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교수로서 몸담고 있는 MIT의 언어학 수업은
절대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니
참으로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사실 촘스키의 부모님이 언어학 관련직에 종사하고 계셨기 때문에
촘스키도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촘스키가 워낙 세상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언어학에서도 기존의 개념을 뒤집어놓은 개념을 많이 창출해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 여러 언어학자들이 촘스키의 개념을 가지고 매우 논쟁이 많았다고 한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언어적 능력이 선천적이라고 하는 주장이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촘스키는 후천적이라고 했던 기존의 주장이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이것은 정치적 행동주의자로서 촘스키의 면모를
언어학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할 수 있겠다.
내가 처음 만난 촘스키는 언어학자 촘스키였지만
촘스키가 유명한 분야는 바로 정치적 행동주의라고 한다.
촘스키는 유대인인데도 불구하고 시오니즘에 반대하기 때문에
미국의 유대인 집단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일 수 있는 유대인의 정신을 반대하면서까지
촘스키는 옳지 않으면 단호히 반대하는 소신을 보여준다.
촘스키는 행동주의자 답게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미국에게서 전쟁 피해를 받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와 같은
위험지역을 아무렇지도 않게오가며
끊임없이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신의 주장을 용기있게 펼쳤다.
물론 내가 보기에는 촘스키가 극단적일 정도로 진보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용기있는 모습, 소신있게 자신이 판단한 것을 말하는 성품은
꼭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10대때부터 신문 좌판대에서 살다시피 하며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는 눈을 기른 것,
80세가 넘은 지금까지 하루종일 언어학 연구를 하고 수업 준비를 하며
아침마다 두세개의 신문을 보는
촘스키의 '배움의 태도'는 가장 본받을 만한 태도지 싶다.
설마 했는데 과연 촘스키는 듀이의 실험학교를 다니면서
'경험을 통해 배우는 습관, 끊임없이 탐구하는 습관'을 기른 사람이었다.
즉 존 듀이의 학습법의 성공적 사례,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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